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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파워 트랜지스터였을까? 파워 MOSFET의 역사

Part That Changed American History · 2026-11-01 · 유튜브 시청 6,573 · 게시판 조회 0 · 외국인

응용파운드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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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응용#전력반도체#MOSFET#스위칭#전원공급장치#반도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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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Part That Changed American History (외국인) · 원제: Is This The Most Important Power Transistor Ever Made?

난이도 판정: MOSFET의 동작 원리와 스위칭 전원의 효율 계산은 기초 전자 지식이 있어야 이해됩니다. 제조 공정과 특허 분쟁, 기업 경영사가 함께 다뤄져 응용 수준의 배경 지식도 필요합니다.

요약

파워 MOSFET이 전원 장치를 작고 효율적으로 만든 과정을 다룹니다. 1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설계 시행착오, 벌집 구조가 가져온 성능 향상, 그리고 특허가 만든 장기 수익과 GaN 시대의 도전까지 시간순으로 정리합니다.

⏱ 00:001. 전원 장치 속의 작은 스위치

⏱ 00:00휴대폰 충전기, 노트북 어댑터, 컴퓨터 전원부 안에는 초당 수십만 번 켜지고 꺼지는 아주 작은 스위치가 있습니다. 이 스위치가 파워 MOSFET이며, 영상은 이 부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한 회사가 그 특허로 어떻게 오랫동안 수익을 얻었는지를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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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12. 스위치의 원리와 1옴이라는 목표

⏱ 00:51트랜지스터는 작은 신호로 큰 전류를 제어하는 움직이는 부품 없는 스위치입니다.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는 켜진 상태를 유지하려면 계속 전류를 밀어 넣어야 하지만, MOSFET은 얇은 절연막 위의 게이트에 전압만 걸어 두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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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켜진 상태에서도 약간의 저항이 남아 전류가 열로 바뀝니다. 1970년대 엔지니어들의 목표는 저항 1옴 이하의 400볼트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것이었고, 이를 달성하면 대형 방열판 없이 전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 02:003. 정류기 회사에서 시작된 이야기

⏱ 02:00에릭 리도는 1930년대 베를린에서 공부했고, 1937년 14달러를 들고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1947년 그는 아버지 레온과 함께 캘리포니아에 인터내셔널 렉티파이어(IR)를 세웠고, 처음에는 라디오와 충전기에 쓰이는 셀레늄 정류기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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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게르마늄 정류기, 다이오드, 트랜지스터로 제품군을 넓혔지만, 당시 회사는 화려한 칩 회사라기보다 부품 공급 업체에 가까웠습니다.

⏱ 04:444. 아들의 합류와 스위칭 방식의 장점

⏱ 04:441970년대 중반 아들 알렉스 리도가 스탠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같은 시기 톰 허먼도 전계 효과 트랜지스터 연구를 위해 IR에 들어왔고, 그들은 에너지를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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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부분의 전원은 선형 방식이라 여분의 전압을 열로 버렸고, 효율이 30~40%에 그쳤습니다. 스위칭 방식은 전력을 빠른 펄스로 잘게 나눠 80~90% 효율에 도달할 수 있었고, 자막의 계산 예시에서는 같은 100W 작업의 열 발생이 약 1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스위칭 속도가 높아지면 변압기 같은 부품도 작아져 충전기가 소형화되었습니다.

⏱ 06:585. 경쟁과 2옴의 실패, 그리고 1옴 달성

⏱ 06:58실리콘닉스가 1975년 VMOS를 선보여 구매 가능한 최초의 파워 FET로 평가받았고, 히타치도 1969년경 설계를 기술한 적이 있었습니다. IR은 이미 시작된 경주에 뒤늦게 뛰어든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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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의 목표는 400볼트, 1옴이었지만 첫 제품은 2옴이 나왔습니다. 원인은 설계 치수가 15미크론이어야 하는데 10미크론으로 그려진 5미크론의 오차였습니다. 리도 우는 좁은 영역에 추가 전하를 넣는 방식으로 저항을 0.7옴까지 낮춰 목표를 달성했고, 1978년 11월 제품을 발표했습니다.

⏱ 10:016. 벌집 구조와 헥스펫의 탄생

⏱ 10:01발표 직후 허먼이 새벽에 전화를 걸어, 파워 MOSFET을 수많은 셀이 함께 스위칭하는 구조로 보고 셀을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배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육각형은 빈틈없이 맞물려 면적당 스위칭 영역을 늘리므로 저항을 낮추고, 최대 전계를 완화해 고전압 내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되었습니다. 일렉트로닉 디자인에 따르면 이 구조로 칩 성능이 약 4배 향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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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9일 IR은 이 설계를 헥스펫(HEXFET)으로 출시했고, 시중 제품보다 낮은 온 저항을 내세웠습니다. 허먼은 리도 우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리도 우는 2004년 MOSFET의 공로는 허먼에게 더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12:567. 특허 수익과 회사의 변화

⏱ 12:56헥스펫의 재정적 성공은 새 공정과 설비, 엔지니어 설득에 수년이 걸렸고, 그 사이 IR은 빚을 늘려야 했습니다. 이후 특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IR은 기본 MOSFET 특허를 근거로 실리콘닉스와 로열티 라이선스 및 1,200만 달러 합의를 이끌어 냈고, SGS 톰슨, 삼성과도 합의했습니다. 자체 보고서상 순 특허 로열티는 1997 회계연도에 약 2,030만 달러였고, 리도 우는 기본 특허가 존속 기간 동안 거의 10억 달러의 로열티를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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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IR은 매출 10억 달러에 도달했지만, 2007년 일본 법인의 회계 문제 조사 이후 알렉스 리도가 사임하면서 리도 가문의 경영이 끝났습니다. 같은 해 알렉스는 실리콘 MOSFET 대신 질화갈륨(GaN)을 쓰는 EPC를 공동 창립했습니다. 2015년 1월 독일의 인피니언이 약 30억 달러에 IR을 인수했는데, 인수 이유 중 하나는 GaN 관련 기술이었습니다. 영상 기준으로 IRFZ44N 같은 부품은 인피니언 이름으로 계속 생산되고 있습니다.

난이도 응용#전력반도체#MOSFET#스위칭#전원공급장치#반도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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