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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반도체 공장 9개월 뒤 현장, 한국과 무엇이 달랐나

돈의 거울 · 2026-11-01 · 유튜브 시청 3,369 · 게시판 조회 0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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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응용#반도체#노광장비#공정#DRAM#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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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돈의 거울 (한국인) · 원제: 베트남이 야심 차게 첫 삽 뜬 반도체 공장, 9개월 뒤 가 보니

난이도 판정: 반도체 공장 건설과 노광 장비, 공정 미세화 개념을 함께 다뤄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다만 복잡한 전문 공정 기술보다는 산업 구조와 사례 비교 중심이라 응용 수준으로 판정했다.

요약

베트남 국영 통신사 비에텔의 반도체 공장은 착공 뒤에도 부지가 비어 있었고, 핵심 노광 장비 계약도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 홍심 사례와 1980년대 삼성의 시작을 비교하며, 설비보다 기술 경험과 인력이 더 중요하다고 짚는다.

⏱ 00:001. 베트남 반도체 굴기의 현재 위치

⏱ 00:00올해 1월 베트남이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10월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영상이 시작된다. 영상은 베트남이 실패한 지점과 40년 전 한국이 성공한 이유를 비교하겠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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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02. 착공식과 9개월 뒤 현장

⏱ 00:20올해 1월 하노이 외곽 호아락 첨단 산업 단지에서 공산당 서기장과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첫 반도체 공장 착공식이 열렸다. 9개월 뒤 로이터 기자들이 찾아간 부지에는 건물이 전혀 없고 잡초만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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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사진에서도 1월과 10월 모두 건물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01:063. 계획과 일정을 둘러싼 논란

⏱ 01:06비에텔은 축구장 30여 개 넓이의 부지에 약 13억 달러를 들여 2027년 말 시험 생산, 2030년 완전 가동을 목표로 했다. 생산 제품은 항공우주, 통신, 자동차 분야에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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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관계자는 회사가 반도체 공장 건설 경험이 없고 정부 자금 집행 절차도 늦어져 2027년 시험 생산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에텔은 일정대로 진행 중이라고 주장한다.

⏱ 02:064. 노광 장비라는 병목

⏱ 02:06영상은 땅보다 장비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비에텔은 네덜란드 ASML과 협상 중이지만 아직 계약을 맺지 못했다. 노광 장비는 빛을 이용해 칩 위에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핵심 설비로, 이것이 없으면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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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노광 장비는 세계적으로 공급 업체가 극히 제한적이고, 네덜란드 정부 허가를 받아야 수출할 수 있어 장비 확보가 쉽지 않다.

⏱ 02:535. 베트남의 목표와 공정 선택의 문제

⏱ 02:53베트남은 세계적인 전자 제품 조립 거점이지만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 설계와 제조는 주로 외국 기업이 맡아 왔다. 이를 바꾸기 위해 2030년까지 반도체 기술 인력 5만 명 양성과 연간 250억 달러 이상의 반도체 매출을 목표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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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텔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32나노 공정을 목표로 내걸었다. 같은 시기 인도 타타 일렉트로닉스는 더 많은 자금과 대만 파트너를 갖고도 55나노나 90나노 같은 쉬운 공정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영상은 비에텔의 32나노 목표가 이후 홈페이지에서 사라졌다고 전한다.

⏱ 04:426. 중국 홍심 반도체의 실패

⏱ 04:42중국 우한의 홍심 반도체는 중국 최초의 7나노 반도체를 목표로 약 25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걸었다. 2019년 ASML의 노광 장비가 들어와 지방 정부가 홍보에 나섰지만, 장비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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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금 대부분이 들어오지 않아 공사비를 받지 못한 건설사들이 떠났고, 회사는 노광 장비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2021년 사업을 접었다. 이후 중국 언론 조사에서 기술력이 크게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상은 베트남과 중국이 같다고 보지는 않지만, 땅과 돈과 기계만으로는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은 같다고 말한다.

⏱ 05:577. 1980년대 한국의 출발과 교훈

⏱ 05:571983년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을 때 일본 등 해외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당시 한국은 기술, 인력, 경험이 모두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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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삼성은 최첨단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 이미 양산하던 64KB D램부터 시작했다. 설계 기술은 미국 회사에서 들여왔고, 엔지니어를 해외에 보내 배우게 했으며, 미국에서 일하던 한국인 박사들을 영입했다. 기흥 공장도 통상 1년 반 걸리는 공사를 6개월 만에 마쳤다고 한다. 이후 몇 년간 큰 적자를 감수했고, 1992년 D램 세계 1위에 올랐다.

영상은 한국의 성공 요인을 쉬운 공정에서 시작하기, 아는 사람에게 배우기, 적자를 견디기로 정리한다. 베트남은 어려운 목표를 먼저 내걸고, 기술 파트너와 핵심 장비 계약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반대라고 평가한다. 젊은 인구, 정부 의지, 입지라는 강점은 있지만 결국 반도체 공장은 첫 삽이 아니라 공장을 지어 본 사람을 데려오는 날 시작된다는 것이 결론이다.

난이도 응용#반도체#노광장비#공정#DRAM#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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